항암제 작용기전 재검증, 임상 이후까지 이어지는 표적 확인의 필요성

항암제는 어떤 단백질을 막는지에 따라 개발 방향과 임상시험의 기준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임상 1상까지 진입했던 후보물질의 주요 항암 효과가 처음 알려진 표적이 아닌 다른 효소에서 나온다는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이번 사례는 신약의 효과뿐 아니라 ‘왜 효과가 나타나는가’를 끝까지 확인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며, 임상 단계의 표적 검증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알려진 표적과 실제 약효의 차이

신약 개발에서는 먼저 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이나 효소를 정하고, 이를 막는 물질을 찾는 방식이 흔합니다. 이번 연구의 출발점도 비슷했습니다. 연구진은 암세포의 유전자 활동을 조절하는 KDM4를 억제한다고 알려진 QC6352와, 구조가 유사하며 임상 1상에 진입했던 자본뎀스타트(zavondemstat)를 다시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교모세포종 세포에서 나타난 강한 성장 억제 효과는 KDM4를 막는 작용만으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연구진은 세포가 DNA와 RNA의 재료를 만드는 과정에 필요한 DHODH라는 효소에 주목했습니다. 두 약물이 DHODH를 매우 강하게 억제했고, 이 효소의 기능을 우회할 수 있도록 조건을 바꾸자 암세포 성장 억제 효과도 크게 사라졌습니다. 즉 약물이 KDM4에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번 교모세포종 모델에서 항암 효과를 주도한 쪽은 DHODH였다는 의미입니다. 연구는 2026년 10월 6일 《Nature Chemical Biology》에 공개됐습니다. 신약 후보의 이름이나 개발 전략에는 처음 설정한 표적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포 안에서는 물질이 여러 단백질과 상호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단백질을 막을 수 있는가’와 ‘어떤 작용 때문에 암세포가 멈추는가’는 같은 질문이 아닙니다. 이번 연구가 보여준 것도 이 구분입니다.

출처: Nature Chemical Biology

임상 진입 이후에도 남는 검증 과제

이번 결과가 더 주목되는 이유는 자본뎀스타트가 단순한 실험실 물질이 아니라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1상까지 진행됐던 후보였기 때문입니다. 2025년 공개된 1상 결과에서는 진행성 또는 전이성 고형암 환자 30명이 약물을 투여받았고, 평가 가능한 23명 가운데 10명에서 질병 안정 상태가 관찰됐습니다. 다만 이 임상시험은 교모세포종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아니었고, 높은 용량 단계까지 모두 탐색하기 전에 개발사의 사업적 결정으로 중단됐습니다. 따라서 이번 연구를 근거로 기존 임상 결과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점은 임상시험에서 관찰된 결과를 어떤 생물학적 원리로 설명할 것인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약효를 만들어내는 핵심 작용점을 잘못 이해하면 어떤 환자에게 약을 우선 적용할지, 어떤 치료제와 함께 사용할지, 실패 원인을 어떻게 해석할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임상 진입 자체가 작용기전 검증의 종착점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신약 개발에서는 약물이 암세포를 억제했다는 사실과 그 억제가 처음 설정한 표적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따로 입증해야 합니다. 이번 연구는 서로 다른 억제제와 유전적 변형, 세포가 필요한 재료를 외부에서 보충하는 실험을 함께 사용해 이 차이를 확인했습니다. 한 가지 시험 결과만으로 작용기전을 단정하지 않고 여러 방법으로 같은 결론이 나오는지 확인한 것입니다.

출처: The Oncologist, Nature Chemical Biology

표적 재해석이 바꾸는 신약 개발 기준

이번 사례는 신약 개발에서 ‘표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실패로만 볼 필요가 없다는 점도 보여줍니다. 자본뎀스타트는 KDM4뿐 아니라 DHODH도 억제하는 물질로 다시 해석될 수 있고, 연구진은 교모세포종 모델에서 DHODH 억제가 항암 효과의 중심이라고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질문은 이 약이 원래 설명대로 작동하는지 여부에 머물지 않습니다. 어떤 암에서 DHODH 의존성이 높은지, 실제 환자에서도 같은 작용이 나타나는지, 기존 DHODH 억제제와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번 결과를 모든 표적항암제의 작용기전이 불확실하다는 주장으로 확대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의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특정 약물의 설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사례이지 신약 개발 전체의 신뢰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임상 전·후 단계에서 서로 다른 실험 방법으로 표적과 약효의 연결을 반복 검증하는 체계가 중요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특히 항암제는 같은 암종 안에서도 종양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 작용점을 정확히 알아야 약물에 반응할 환자를 찾는 기준도 정교해질 수 있습니다. 병용치료를 설계할 때도 어느 경로를 차단하고 있는지 알아야 중복을 피하거나 시너지를 노릴 수 있습니다. 표적 검증은 후보물질을 고르는 초기 절차가 아니라 임상 결과를 해석하고 다음 연구 방향을 정하는 과정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출처: Nature Chemical Biology

효과만큼 중요한 작동 원리의 확인

좋은 신약은 효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왜 효과가 나타나는지까지 정확히 알아야 다음 환자와 다음 임상시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임상에 진입한 약물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작동 원리를 다시 확인해야 하며, 그 과정이 실패가 아니라 더 정확한 치료 전략을 만드는 단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으로의 검증 기준도 ‘효과가 있는가’와 함께 ‘무엇이 그 효과를 만드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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